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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방식

위기의 시대에 등장한 리더(윈스턴 처칠)

by NOTISTO0 2023. 5. 13.

처칠이 태어난 곳은 블레넘 궁전이라는 곳이었다. 궁전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궁전의 정문에서 건물 입구까지의 거리가 1킬로미터이고 전체 넓이가 330만 평이다. 89만 평이라는 여의도의 4배나 되는 규모다. 땅이 좁아서 제국주의를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영국에서 330만 평의 궁전에서 태어난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셔 주에 있는 블레넘 궁전은 원래 처칠의 선조인 존 처칠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왕으로부터 받은 하사 지였다.

 

보통은 일반인들이 사는 집에는 ‘Palace’라는 말을 붙이지 않지만 왕이 하사한 땅에 궁전까지 지어주면서 ‘Palace’라는 말을 붙였다. 처칠이 태어난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을 보고 나는 대단하다고 감탄한 게 아니라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제국의 궁궐 같은 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런 제국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한편 처칠은 팔삭둥이였다. 어떤 책에서는 처칠은 모든 게 조숙했다느니 공부 빼놓고는 모든 게 빨랐다느니 하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8개월 만에 태어난 게 아니라 부모가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한 뒤 8개월 만에 태어난 것에 불과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처칠도 간디처럼 학창 시절에는 열등아였다. 유럽에서는 어려서부터 라틴어를 가르치는데, 라틴어 문법을 못 외워 고생한 이야기를 자서전에 썼을 정도로 열등아였다. 학창 시절 공부에 있어 열등아였다는 점은 처칠이나 간디나 같았다. 하지만 처칠은 간디가 다닌 이너템플에 갈 정도도 안 됐던 것으로 보아 간디보다 공부를 더 못했던 것 같다.

 

공부를 못했던 처칠은 아버지의 배경 덕을 보면서 해로우라고 하는 사립학교에 4년 동안 다니고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갔다. 우리나라는 사관학교 출신들이 국가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같은 대통령을 배출해내기도 했지만 당시 영국은 공부 못하는 학생이 사관학교에 갔다. 처칠은 제일 낮은 수준의 학교인 사관학교에 삼수를 해서 입학할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사관학교에서 대학 수준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4년인데 영국은 1년이었다.

 

1년 동안 군사교육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데, 만약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보병이 되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육군의 핵심은 보병이었다. 그래서 보병 장교가 되는 게 사관학교 출신들의 꿈인데, 처칠은 보병이 되지 못하고 말 타는 기병 장교가 되었다. 기병 장교가 멋있어 보이지만 공부는 못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처칠은 군인으로서 출세한다. 군대를 굉장히 좋아했고, 또한 전쟁광이라고 할 정도로 전쟁을 좋아했다. 그래서 “군대는 명성으로 가는 고속도로다.” ,”전쟁은 웃으면서 즐기는 놀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사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때문에 위대해졌다고 봐야 한다. 처칠의 시대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변호사나 의사 같은 엘리트가 못 되는 사람들이 군인이 됐다. 군인의 위상이 그 정도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맞서 연합군을 이끌며 처칠의 전성기가 도래했으니 히틀러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처칠은 정치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는 26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그 정도면 영국에서도 대단히 빠르게 출세를 한 셈이다. 그리고 1900년부터 죽기 직전인 1964년까지 62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살아갔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보통 8선, 9선이라고 하면 대단히 원로 대접을 하지만 영국은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임기가 따로 없다. 그러니 처칠이 62년이나 국회의원을 한 것을 두고 뭐 그렇게까지 오래 했느냐는 차가운 눈초리는 무색할 듯하다. 또한 처칠은 외무장관을 제외한 모든 장관을 다 역임했다. 사실 처칠은 국제통인데 외무장관을 못한 것을 자신도 아쉬워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는 수상이 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선거에 패해 물러났고, 그러다가 1951년부터 1955년까지 다시 한번 수상이 되었다.

 

그리고 91세에 죽는다. 간디는 대영제국에 투쟁한 사람이었고, 처칠은 그런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간디와 처칠은 19세기부터 비롯되어 20세기 초에 최극단을 보였던 제국주의 투쟁의 맞수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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