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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방식

신을 규정하는 건 인생의 운영체제를 쓰는 것이다.

by NOTISTO0 2023. 5. 17.

인간은 왜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지는 알겠는데 왜 사는지는 모를 때.. 왜 사는지 확고해져야 그다음에 어떻게 살지를 정할 수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굉장히 세속적인 질문이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굉장히 영적인 질문이다. 영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에 차이가 무엇이냐? 기성 종교제도는 영적인 부분이 있지만 영적이란 단어가 기성 종교를 포괄하는 좀 더 상위 개념이라 생각한다. 종교란 무엇일까?

 

어느 정도 진리에 대한 사실, 성경이나 쿠란, 불교경전같이 어느 정도 진리에 대한 사실들을 담고 있다 한다면은 ‘신’이라는 대상을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만진 것이다. 굉장히 흥미롭게도 여러 가지 종교들의 형태가 비슷하다. 그리고 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구체적인 교리, 행동지침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서 유일신 사상이 우리 인류의 성립된 이래로 대체로 뭔가 비슷하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윤회가 없다고 주장을 하지만 틀렸다.

 

사실 과거 기독교 성경에는 윤회 사상이 들어있었다. 종교는 하나의 통치 체제다. 왜일까? 진리를 담고 있는 철학이 아니라 인간 집단을 통치하고, 규율하고 우리 인간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하나의 정치적인 장치라고 본다.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해 탐구해 보자. 사실 우리는 왜 사는지를 먼저 규정하고 그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될지가 답이 나온다. 가장 세속적인 것과 가장 영적인 것은 사실상 하나다.

 

우리가 자연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듯이 가장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서로 엮여있다. 근데 왜 이렇게 생각을 안 할까? 일단 한국 자체가 굉장히 세속적인 나라고, 한국 자체가 유물론주의가 강한 나라다. 서로 엮여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왜 사는가? 에 대한 질문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 사상이 우월한 그것이 작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 어떤 신념과 신이 거리가 먼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뭔가를 아예 믿고 있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뭔가를 믿고 있다. 유물론과 무신론이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게 아니고 유물론과 무신론이 신념이라는 가장 큰 집단 나에 집단으로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유물론, 무신론조차 하나의 신앙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신을 믿는다고 할 때 나한테 있어서 신은 예수님 같은 그런 수염을 기른 인자하신 남자 어른이나 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어떤 성당의 엄격한 할아버지 얼굴이 아니다.

 

이제부터 그 ‘신’이라는 단어를 삶이라고 환원을 하겠다. 즉 신을 (인격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삶이라는 단어로 환원을 하면 지금까지 말한 유물론과 무신론조차 하나의 신학의 한 갈래다.라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신은 없다.”, “나는 유물론을 믿는다.”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삶을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사십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당신은 삶을 어떻게 규정하십니까?라는 질문과 동일한 질문이다.

 

만약에 나의 외부(바깥세상)에 왜 사는가? 에 대한 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건 틀린 것이다. 왜냐면 왜 사는가? 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모양인가? , 왜 이렇게 많은 고통들이 있고 누구는 왜 이런 불행을 겪고 왜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왜 불의가 승리하는가?” 신이 있으면 말이 안 된다는 모순들을 보며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이 신이 있다고 믿음으로 인해서 유신론자가 되면서 어떤 장점이 생겼냐 하면 삶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맨 처음 왜 사는가? 에 대한 문제를 이것과 연결해 보면 무슨 답이 도출이 되냐?

 

결국 우리들의 신학, 우리들의 신념은 mac, os, android 같은 운영체제인 것이다. 이게 뭐와 일맥상통하는가? 과거에는 종교가 정치적 기능으로 사용됐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신념이란 게 있기 때문에 질서가 잡히고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뭔갈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안정성의 추구가 본능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자, 민주주의자, 독재국가, 공산주의자 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21세기에 진정한 신은 누구일까? 바로 “돈”이다. 즉 삶이란 것은 나가 타고난 것과 나를 둘러싼 것의 간에 상호작용이자 싸움이다. 그 속에서 내 자신이 종합되는 것이다. 100% 유전적이지도 않고, 100% 후천적이지도 않다. 모든 게 유전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후천적으로 다 학습이 되고, 뭐든지 후천적으로 다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린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당신은 삶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매우 중요하다. 이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삶이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는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사람을 내가 두 눈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나를 설득할 수 없다. 왜냐면 나는 이것이 나의 신념이 도덕적으로 Right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수학적으로 정답이다 오답이다라는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작동하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가?

 

이 운영체제가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좋다를 하게 만드는데 작동을 하는가만 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운영체제를 남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평생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만 하면 답을 못 찾는다. 외부에서 헤매다가 이게 진짜냐 아니냐, 진리냐 아니냐만 재보고 따지다가 끝날 것이다. 왜 사는가?라는 두루마리가 있으면 그것은 빈 종이일 것이다. 이건 자기가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게 나인가? 이게 나를 표현하는가? 그게 자기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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